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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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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짓것 하늘 한번 걸어보자
작성자 김홍산
핸드폰 비공개
몇 해 전, 아내와 함께 중국 장자제를 다녀왔다. 장자제 여행에는 톈먼산 해발 1,400m에 있는 귀곡 잔도와 유리 잔도를 걷는 일정이 들어 있었다. 잔도는 깎아지른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다. 어떻게 저런 곳에 잔도를 놓았을까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높았고 위험해 보였다. 거기에 유리 잔도는 한술 더 떠서 발밑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귀곡 잔도는 정해진 일정이었고, 유리 잔도는 옵션이었다. 잔도로 가는 버스 안에서 유리 잔도에 갈 사람 신청을 받았다. 일행은 열댓 명으로 대부분 비슷한 연령대의 부부들이었다. 일정에 있는 귀곡 잔도는 어쩔 수 없다 쳐도 어떻게든 유리 잔도는 피하고 싶었다. 안가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은근슬쩍 묻어가려고 눈치를 살폈는데 누구 하나 빠지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상황이 그러니 혼자 빠지겠다는 소리도 못 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늘이 도왔던지 그날 잔도에는 운무가 잔뜩 끼어 현기증 나는 발밑의 낭떠러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 덕분에 유리 잔도까지 무사히 걸었다. 일행들은 운무 때문에 멋진 경치를 못 봤다고 투덜댔지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처럼 높은 곳에 올라가면 나도 모르게 몸이 자꾸 낭떠러지로 가는 것 같아 두려움을 느낀다. 이게 고소공포증인지 겁이 많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 때문에 높고 위험해 보인다 싶은 곳은 일단 피하고 본다.
즐겨보는 TV 프로그램 중에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프로가 있다. 올 3월, 벨기에서 온 여행자들이 원주 여행을 떠났고, 거기에 소금산 출렁다리가 나왔다. 소금산 출렁다리가 생겼다는 말은 진즉에 들었고, 사진으로는 몇 번 보았다. 우리나라에 있는 출렁다리는 두 군데를 가봤는데 둘 다 호수 위에 놓여 있는 다리였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는 처음이라 금세 호기심이 발동했다.
영상이기는 하지만 소금산 출렁다리를 제대로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사진이나 영상은 어디서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보이는 거나 느낌이 다르다. 요즘은 영상 장비가 발달해 눈으로 볼 수 없는 것까지 사실감 있게 보여준다. 두 산봉우리를 잇는 출렁다리는 아슬아슬하게 허공에 걸려 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멋진 경치이자 볼거리이다. 거기에 세상을 다 품은 듯이 내려다보는 경치가 있어 즐거움과 재미는 따따블이다.
겨울의 끝자락에서부터 가보고 싶었던 원주 여행을 한 계절 건너뛰어 여름의 초입에서야 떠난다. 이번 여행에서 꼭 보고 싶었던 곳은 소금산 출렁다리와 근처에 있는 뮤지엄 산이었다. 첫 코스로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소금산 출렁다리로 정한다. 높은 곳에 있어 은근히 걱정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럴수록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원주로 가는 동안 출렁다리를 본다는 흥분과 기대감 그리고 걱정이 뒤엉켜 설렌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20여 분을 걸었을까. 출렁다리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 매표소에 도착한다. 입장료는 3,000원이다. 돈을 내면 티켓 용도의 손목밴드와 2,000원짜리 원주사랑 상품권을 내어준다.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상품권을 받았으니 입장료는 1,000원인 셈이다. 요즘 물가를 보면 2,000원으로 딱히 살만한 것은 없다. 상품권을 사용하려면 결국 웃돈을 얹어야 무엇을 사거나 먹을 수 있다. 그만큼 지역에서 돈을 쓰게 되니까 꽤 괜찮은 아이디어이다. 이리 치나 저리 치나 메치기는 매한가지인데, 공짜 상품권이 생긴 것 같아 시작부터 기분이 좋다.
손목에 밴드를 감고 본격적으로 계단을 오른다. 계단 하나하나에 번호가 붙어 있다. 578 계단을 올라야 출렁다리를 만난다. 계단은 계속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올라가는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일정 높이마다 방향을 좌우로 틀어놓았다. 그 덕분에 방향을 틀 때마다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어 크게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
시간을 재지 않았지만, 출렁다리에 도착하는 데 대략 20여 분이 걸린 듯하다. 때가 때인지라 이곳에서도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오가는 사람들이 마주치지 않게 일방통행으로 동선을 임시 바꾸어 놓았다. 스카이워크 전망대를 걸어 출렁다리 출구 쪽에서 출렁다리를 건너 입구 쪽으로 내려오게 되어 있다.
출구 방향의 스카이워크 전망대 길은 출렁다리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 길에서 출렁다리 경치를 맛보기로 즐길 수 있다. 출렁다리의 양쪽 끝을 붙잡고 있는 두 봉우리를 시야에서 잠시 가려놓으면 사람이 하늘을 걷고 있는 듯한 멋진 장면을 보여준다. 그 모습에서 절정의 무림 고수가 허공을 휙휙 날아다니는 무협지의 한 장면이 연상되어 혼자 미소를 짓는다.
허공에 둥실 떠 있는 출렁다리를 보면 누구라도 마음이 들뜨지 않을 수 없다. 그때까지 기억에서 잠시 잊혔던 걱정이 시샘하듯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든다. 아차! 싶어 눈길을 돌려 출렁다리가 얼마나 높은데 있는지를 가늠해본다. 긴말이 필요 없이 높다. 출렁다리 저 밑으로 보이는 건물과 산허리를 휘감아 도는 물줄기를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 올릴 수 있을 것만 같다.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그것을 보면서도 딱히 걱정스러운 마음이 일지 않는다. 걱정이나 불안보다 빨리 출렁다리에 가고 싶어 마음만 급해진다. 이것을 보면 아무래도 고소공포증이 있는 게 아니라 겁이 많은가 보다. 출렁다리는 절대 끊어질 일 없는 굵은 와이어와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 철재로 만들어졌다. 색칠도 하늘에 어울리는 파란색으로 칠했다. 가운데가 처진 상태로 길게 이어져 허공을 가른 모습은 출렁다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장관이다.
출렁다리 구경에 빠져 있다 보니까 어떻게 출렁다리를 만들었는지 그것이 궁금해진다. 일반 다리야 교각을 세우고 그 위에 상판을 얹는데, 허공이라 교각을 세울 수 없어 더 궁금하다. 그만큼 위험하고 어려운 공사였을 거라는 짐작은 가지만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도통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위험한 공사였을 거란 생각에 장자제에서 잔도 공사를 하던 사람들 모습이 떠오른다.
임시 작업 통로는 가늘어 보이는 철재 받침을 세우고, 그 위에 얼기설기 나무판을 얹어놓았다. 서 있기도 불안해 보이는 그 통로에서 작업자들은 손수레를 잡아끌며 뛰어다녔다. 생명줄은커녕 보호 장비 하나 없이 작업 바지에 러닝셔츠만 입고 태연자약하게 일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깐 지켜보는 동안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모른다. 그때는 그 작업자들 바지 뒷주머니에 여분의 목숨이 하나씩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드디어 오늘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출렁다리에 조심스럽게 올라선다. 시원한 바람이 스쳐가는 듯한 기분 좋은 떨림이 찾아온다. 바람 한 점 없는 데다 사람도 많지 않아 짜릿한 흔들림은 없지만, 일상에서 맛볼 수 없는 색다른 즐거움이다. 살면서 이렇게 허공에 머물러 본 적이 있었던가? 맞다! 군대에서 유격훈련 받을 때 했던 줄타기 훈련이 있다. 그것이 가장 유사한 경험이지만, 그래도 지금 이 분위기에 그걸 갖다 대는 건 영 어울리지 않는다. 가끔 몸으로 전해오는 작은 흔들림이 스릴과 즐거움을 안겨준다.
출렁다리 바닥은 구멍이 뚫려 있어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날씨가 좋아 쨍한 사진이 나오듯 주변 경치가 제 모습 제 색깔대로 눈에 찍힌다. 볼 만큼 보았다 싶으니까 욕심이 생긴다. 쨍한 경치도 좋지만, 출렁다리 밑으로 운무가 짙게 깔린 경치가 펼쳐진다면 얼마나 멋질까 싶다. 그런 경치는 출렁다리 최고의 장관이자 소금산이 만들어내는 불후의 역작이 될 것이다. 그 경치를 두고는 삼대가 덕을 쌓았느니 마느니 하는 이야기가 필히 나올 성싶다. 욕심이 있어도 이 멀쩡한 날에 운무를 불러들일 제갈공명의 재주가 없어 상상의 날개만 펼친다.
사람에 등 떠밀려 갈 일이 없어 다리 중간에서 한참 동안 경치를 즐긴다. 같은 출렁다리라도 호수 위에 있는 것과 산 위에 있는 것의 경치와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각기 나름의 경치와 멋을 품고 있어 딱 꼬집어 어디가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어디 한군데를 꼭 선택해야 한다면 조금 더 풍부한 경치와 짜릿함을 맛볼 수 있는 이곳을 꼽을 수밖에 없다.
소금산 출렁다리는 200m로 산악보도교 중에서 국내 최장, 최고를 자랑한다. 그래도 막상 건너고 나면 짧게 느껴져 아쉬움이 남는다. 출렁다리를 건너본 사람이라면 아마 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아쉬움이 남는다는 건 그만큼 좋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길을 돌려 되돌아갔다 다시 올까도 생각해보지만 그건 반칙이다. 반칙도 반칙이지만, 좋다고 한 번에 끝을 보려고 달려들면 오히려 감동과 여운이 반감된다. 부족한 듯 모자란 듯 아쉬움이 남을 때 돌아서야 그나마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내려가는 발걸음이 새털처럼 가볍다. 왜 안 그럴까. 허공을 밟았는데. 그제야 올라오는 사람들의 부러운 눈길을 은근히 즐기며 계단을 밟는다. 주차장 옆에 늘어선 식당에 들어가 조금 늦은 점심을 먹는다. 식사를 마치고 상품권에 돈을 보태 음식값을 지불한다. 분명 내 돈으로 음식값을 치렀는데 싸게 먹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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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2.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