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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볼만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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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열왕후탄생지비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개운동 원주고등학교 앞
연락처 비공개
인열왕후는 조선 인조의 비 이다. 인열왕후는 청주한씨로 후에 서평부원군이 된 한준겸이 원주목사로 있을때인 선조 27년(1594) 7월 1일에 원주인동에서 태어났다. 1610년(광해군 2) 능양군( :인조)과 결혼하여 청성현부인으로 봉하여지고,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왕비가 되었다. 왕후는 성품이 인자하여 인조를 도와 여러 가지 치적을 쌓았다고 한다. 광해군을 모시던 보향이란 궁녀가 옛 임금을 잊지 못하여 가끔 숨어서 울었다. 함께 있던 궁녀가 인열왕후에 게고하자 왕후는 "그는 의로운 사람이다"하고는보향을 불러다가 위로하였다.

나라나 인생이나 다 무상한 것이다. 지금 임금이 하늘의 뜻으로 왕위에 올랐지만 광해군 처럼 언제 잃을지 누가 알겠느냐? 네 마음가짐이 의로우니 가히 내 아들들을 보육할 만하구나.그리고는 보모상궁으로 삼았다. 밀고한 궁녀는 종아리를 때리고 그 인성을 꾸짖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이런 일도 전한다. 광해군이 죽은 다음해 5월 21일에 강화도에 유배중이던 광해군의 아들이 아내와 나인들이 벽을 뚫어 도망치다가 그 이튿날 잡혔는데 왕실에서는 대부분이 폐동궁을 죽이고자 하였다. 이때 인열왕후는 다음과 같이 인조에게 고하여 목숨을 구해 주었다고 한다. 나라의 흥망은 덕의에 있고 덕은 마음에 달렸습니다. 아침에 천자가 되었다가 저녁에 필부가 되고자 해도 얻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상감께서 오늘 조심하시면 다시 없는 어진 임금이 되실 것입니다. 폐동궁을 살리고 죽이는 일을 부녀자가 나설 바 아니오나 원컨데 그를 죽이지 마시옵소서. 인열왕후의 "인"이 어떤 연유에서 붙여졌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1635년 (인조 13)에 41세로 사망하였고 1651년 (효종 2) 휘호를 명덕정순으로 추상하였으며, 슬하에 4형제를 두었는데 효종·소현세자·인평대군·용성대군이다. 능 은 장릉으로 처음에는 파주 운천리에서 장사지냈으나 1731년 (영조 7) 탄현면 갈현리로 이장하였다. 인열왕후탄생지비 는 원래 원주시 인동의 왕비각안에 있었는데 한국전쟁때 부근 폭격으로 파괴되어 비각은 물론 그 안에 비석까지 없어지고 말았다. 그 후 재원 청주한씨 문중에서 주동이 되어 복원계획으로 현 위치인 원주고등학교 앞 도로공원에 세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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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2.12.12